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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노력 본문

일기

재능과 노력

junwoopark 2024. 6. 12. 23:00

나는 내가 나만의 가치를 좇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이의 노력이 나의 재능을 앞서는 것에 내가 엄청난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채기 전까지는 그랬다.
무엇이 계기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여지껏 내 안에 잔존했던 불안함의 출처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 현실의 나와 무엇이든 이미 최고여야하는 자아상 사이의 간극이 대관절 좁혀지지 않아서 그러했다.
심지어는 어떤 자격과 실력을 갖추어내길 원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천부적인 것으로만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지길 원했다.
나의 분투가 아닌 타인의 답보를 통해서만 그것을 이루려고 했다.
 
진짜로 노력했던적은 너무 옛날인 것 같고, 어느샌가 그저 타고난 것으로만, status quo 그 자체가 이미 최고인 결론에 다다르길 원했다.
과정은 없었고 나는 이미 최고인 상황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권력이 줄어들기만 할 뿐인 황제가 된 것 마냥 누군가가 노골적으로 노력해 성장하는 것 자체에 열등함을 느끼고 고고한 척을 하고 성골마냥 젠체했다.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개발하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나아지는 다른이들을 보면 어딘가 마음이 블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여러가지로 바쁘니까 가만히 있으면서 동시에 걸출함을 유지해야하는데, 답보하지 않는 타인들이 나의 요행 계획에 협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노골적인 것을 미숙한 것으로 치부하고, 암시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가치를 두었다.
은유는 예술적으로 문학적으로 나름의 분명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그 특징 때문에 나의 생각이나 행동들은 불분명하고 목적없이 산재했으며 이리저리 방황했다.
나는 그것이 틀릴때에도 종종 직관이라는 단어로 포장했다.
다른이의 노골적인 노력을 무시하는 마음을 기저에 깔고 죽을만큼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면책했다.
노력같은 것은 미완에게나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며, 나는 이미 굉장한 사람이(여야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척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당연하게도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러있을, 아니 사실은 오히려 퇴화하기만 할 뿐인, 나의 재능이 타도당하는 것에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끝끝내 뒤처지는 것에 절망할 뿐이다.
나는 아직 내가 원하는만큼 충분하지 않은 스스로를 직시할 용기가 없었고, 노골적으로 변하는 대신 이미 정점에 다다랐다는 거짓으로 스스로를 속여 우쭐댔으며, 이를 반증하는 증거들에 불안해한 것이다.
 
노골적이라는 것은 원초적인 것에 솔직하다고 할 수 있다.
누구를 탓하긴 어렵다. 과거의 나는 때때로 원초적인 욕망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 보다 숨기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고, 돌이켜보면 원초적인 것을 따르기보단 유도된 가치들에 눈이 멀었다.
하지만 결과가 원인을 수식할 수는 없는법이다.
예컨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식되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혹자가 자기만족을 위해 미용을하고 치장을 한다는 헛소리를 해대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요즘은 스스로에게는 연구를 (잘)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연구를 좋아/잘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픈 것이 아니냐는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언젠가 누가 물어보았을때 이와 비슷하게 대답한 기억이 있다.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의미한 무엇인가를 남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이다.
언젠가 쓴 일기처럼 내가 세상에 난 이유가, 사실은 쥐뿔 없을지라도, 내가 초래한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함이었다고 뿌듯해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고싶은 것을 담아야 할 그릇에 되고싶은 것들을 담아내었다.
특별히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기에 요행만을 바랬으며, 내 재능만으로는 쉬이 요행을 불러오기 어려워질 때부터 불안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의 재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것에만 분노해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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