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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감과 능동성 그리고 일 본문

일기

의무감과 능동성 그리고 일

junwoopark 2023. 8. 24. 22:49

요즘 하루에 몇 번씩 하는 생각이 있다. 어쩌면 막연한 느낌이기도 하다.
윤달마냥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상한 시기라는 느낌도 든다. 전체적인 매끄러움을 위해 존재하는 단기 조정기간인 것이다.
바로 지금 손에 잡고 있고 눈앞에 있는 이 일련의 <일>들을 미루자!
지금 연구실이라면 집에 가서 하는 것으로 하자, 지금이 집이라면 내일 연구실에 가서 하는 것으로 하자.
달리 하고싶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시간을 이 일을 하는 데는 소비하지 말자.
급한 일이 아니니까,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내일이 되면, 그때가 되면 시작하는 것으로 하자.
온갖 꾸밈을 당하고 능력을 부여받은 미래의 나는 슈퍼맨이 되고, 지금의 나는 모든걸 내어주어서 초라해진다.
그리고는 지금 당장 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막연한 미래에는 더 잘하게 되는 상상이 극도의 시너지를 이룬다.
노력 없이 성취해버린 가상의 모습을 나와 동화시키는 것에 중독되어 마치 무엇이든 다 이루어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의 하루를 이루는 많은 것들을 일의 범주로 포괄적으로 분류하게 되었고, 의무감으로만 수행되는 일들은 가능한 나중에 하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일 이라는 것은 왜 하는가?)
궁금하고 설레며 순수한 열정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행위들로만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모습조차 미래에 있다.
지금 내가 하는 행위들은 마음이 동해서, 내켜서 하는 것들이어야한다는 무적의 핑계를 등에 업고 이런 행동 양식을 여전히 고수하고있다.
오늘 하루, 지금을 사는 것을 내일하길 바라는 지경에 이를 것만 같다.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막연하게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명히 불가능하다.


어떤 웹사이트에서 이런 댓글을 본적이 있다.
"훌륭한 연구자 보다는 엘리트가 되고 싶어하고, 설상가상으로 하는 것보다 되는 걸 더 원한다."
비슷한 두 욕망, 되고싶다는 것과 하고싶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인가를 잘하고 싶다는 것은 어떤 상태가 되고싶다는 것이고, 능동적으로 내킨다는 것은 하고싶다는 것이다.
되고싶다는 것은 그 기준이 외부에도 많은 반면 하고싶은 것은 오로지 나의 내면에만 의존한다.
또한 되고싶다는 것은 별개의 목표가 설정된 미래 지향적인 것이고, 하고싶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해 준비가 끝난 현재형이다.
되고싶다는 마음은 의무감을 수반하고, 하고싶다는 마음은 능동성 내지는 주체감을 불러 일으킨다.
공학적인 비유로는 되고싶다는 마음은 어떤 waypoint를 나타내고 하고싶다는 마음은 LOS에 견줄 수 있다.


한편, 일은 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것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것들을 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들을 대상으로 발휘되는 욕망은 사실은 또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싶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요즘 하고있는 생각은 어쩌면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 이외의 행위들은 하고싶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만 하고싶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하고싶은 것들은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의 범주 안에 있으며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의무감으로 점철되어 꼴도 보기 싫은 일일지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로 명시적으로 쪼개어 내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이때문이 아닐까.
하루를 이루는 많은 일들을 할일 내지는 해야할일 등으로 과잉 분류해 막연하고 거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지양해야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5초 정도를 세고 <일단 하기>와 같은 전략은 예컨대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속여 의무감의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또 한편, 이미 되어있는 어떤 상태만을 바란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 바람은 언제나 미래에 있고 그 바람에는 늘 다음 바람이 있다.
그것은 탈출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재귀호출이어서 영구히 그 만족을 뒤로만 미루게 된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무엇인가가 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당연히 아직 안 되었을 것이므로) 그 무엇인가가 되지 못한 사실에 더 많은 의무감을 지불하고 진도를 땡겨와야할 뿐이다. 누군가는 능히 일생동안 그 짐을 이겨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워크-라이프 밸런스라는 이상한 말이 상당한 인기를 얻은 이유는 아마 의무감은 잠시 내려놓고 하고싶은 것들로 이루어진 시간들로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공통된 마음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반면, '하고싶은 일'이라는 표현이나 그것을 찾으라/하라는 조언은 이제 나에게는 너무 어색하고 납득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일이라는 것은 그것을 일이라고 부르는 이상 하고싶을 수 없다. 일이라고 분류한 이상 그것은 이제 의지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하고싶다면 그 자체가 목적이므로 더이상 일이 아니다.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들은 거추장스러운 설명이나 변명이 필요 없다.
공리같은 것이어서 <하고싶어서 한다>라는 생각을 막아설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만 제지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다. 능동성은 그런 것들을 대상으로만 발휘할 수 있다.
더이상 쪼개어낼 수 없는, 불순한 목적따위 없는 순수한 형태의 욕망인 것이다.
그런 궁극적인 것들은 내 생각에 놀랍도록 단순한 형태이고 아쉽게도 아주 극소수이다.
습관적인 미룸에 대한 나의 고민은 사실 하고싶은 것이 없다는 점에 대한 고민들과 연결된다.
정확히는, 이 많은 의무감들을 제껴놓을 수 있는 명분이 되는,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싶은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에 대관절 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마 하고싶다는 마음이 무엇일까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것 같다.

지나치게 극적인 도약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쩌면 <하고싶다>는 개념은 애초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의도적으로 이상적인 특성만을 줄줄 늘어놓았던 해당 욕망에 대한 요즘 내 추측은 그것이 허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고싶다는 단어로 수식되는 욕망도 결국에는 명명하거나 명시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어떤 상태가 되고싶다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어떤 목표점 없이 LOS 단독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예컨대2 춤을 추고싶다는 단순하고도 순수한 하고싶음이라도 춤을 춤으로써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가 되고싶다는 욕망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식욕, 성욕, 수면욕과 같이 더이상 쪼개어낼 수 없을 것같은 본능적인 영역의 욕망들도 사실은 생물학적인 기작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 욕망이 안겨다줄 결과들 가운데 특정 상태, 특히 어떤 호르몬 내지는 화학 물질의 최대가 되는 등의 상태, 가 되고싶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보면 자유 의지의 영역에 속한 것 같은 <하고싶다>는 욕망은 어찌보면 carrot chasing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이런 관찰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이 되었든 일단 하고 그것이 미래 시점에서 어떻게든 연결되겠거니 하고 믿어야 한다는 주장을 옹호했던 나의 예전 일기(2022.04.10 - [일기] - 선택)와 상반되는 생각인데, 그런 생활양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미래의 특정 지점과 상황을 그려야한다는 것이다. 
어디로나 가다보면 어떻게든 과거의 선택들과 연결되게 되어있으나, 일단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라도 (되고 싶은) 다음 지점을 상정해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목표점이 먼저냐 방향이 먼저냐 먹고 먹히는 낳고 낳아진 순환에 빠진듯한 느낌이다.

 

아니면 다소 허무한 결론으로, 되고싶은 것만 너무 많아서 하고싶은 것을 하고싶은데(?) 하고싶다는 것에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매겨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앞으로의 모든 시간이 더더욱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간을 의무감으로만 가득채워 보내는 스스로가 염려스럽다.
우리는 바라는 것 보다 지나치게 짧은 시간을 산다.
그래서 어쩌면 능동성으로 풍성하게 보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를 시간들이 아쉬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능동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끝없는 의구심이 든다.

아쉬운대로 <되고싶다>는 것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라 믿고, 마치 그것이 하고싶은 것 마냥 스스로를 속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최선인 것일까.

핑계만 늘어가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에조차도 의무감이 든다.

무슨 당근을 달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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