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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사랑(?) 본문

일기

죽음과 사랑(?)

junwoopark 2022. 7. 11. 00:39

죽음 이후에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스스로를 포함해 그 어떤것도 지각/자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배경이나 문맥에 대해 아는 바는 별로 없지만 "고로 존재한다"로 끝나는 유명한 주장의 대우를 생각해보자면 그렇다.
죽는다는 것이 곧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어도, 죽음을 떠올려보는 것은 언제나 소름돋게 두렵기만하다.
그 두려움은 압도적인 무한함으로 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명확한 사실마저도 너무나 위태롭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총체적 테러이다.
이상하게 요즘들어 죽음을 이해해보려는 무모한 시도를 자주 해보게되고, 그 대가로 전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다는 점이 무색하게도 나는 타고있는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칠때 내가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매우 강하게 느끼는데, 올해 몇번 장기간 비행을 하면서 하얗게 질리는 경험을 많이 했던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한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라서 이 단어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죽음에서 시작되는 영구적인 무아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것들 보다도 더 무섭다. 여태 해온, 앞으로 할 일련의 선택과 결과들이 그 스위치가 내려간 순간부터는 허무의 영역에 들어서서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 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생각하고 의식하는 주체로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는 것은 나에게는 공황 그 자체이다.
아마 직관으로만 이해하기는 불가능할 두 개념인 나의 부재와 영원이 겹치는 바람에 곱절로 혼란스러운 것 같다.
내가 죽음에 대해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는 있겠지만, 나는 어릴적부터 이따금씩 이런 개념들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만 죽음이라는 개념을 직시하거나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서, 그렇게 압도적으로 두렵기만 할 때는 다짜고짜 머리를 흔들어재끼면서 그 사실을 무수히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그리나 단지 임시적으로 잊으려 할 뿐이다.
나는 그래서 죽음에 초연하거나, 가치 체계에서 죽지 않는 것보다 높은 것들이 있는 이들을 아직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본인이 사는것보다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 내지는 어떤 사상을 관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거나, 원대하고 심오한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혹은 사는것이 괴로워서, 즐겁지 않아서 목숨을 바치는 이들이 그렇다.
은유적인 표현이라고는 해도 죽고 싶다 내지는 죽이고 싶다와 같은 표현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것에도 요즘에는 큰 거부감이 있다.
꼭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직 나보다 중요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여전히 죽는다는 것이 소스라치게 두렵다.
선택과 관련된 지난 일기를 돌이켜봤을때, 모든 선택에 있어서 궁극적인 기준이 되어야하는 것은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것들이 불투명해보이고 애매하다면, 나는 반드시 그리고 영원히 사라진다는 공포에서 가장 멀어질 수 있는 선택을 하는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지나치게 모호한 표현이기도 하다.

최초로 이 심연을 떠올리게 된 날 울며 잠에서 깬적이 있다.
엄마는 연신 괜찮다 괜찮다를 반복하며 평소와는 다른 나를 안아주었던것 같다.
나는 그것이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또 한편으로는 왜인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날은 더이상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잠든것으로 기억한다.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많은 이들이 사랑이, 혹은 제대로된 사랑만이, 이 공포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랑의 고귀함을 강조하기 위한 과격한 표현으로만 사용될때도 있지만, 어쩔때는 또 완전 터무니 없는 주장은 아닌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들,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하면서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두려움을 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우스꽝스러운 표현이지만 그렇다면 결국 죽을때까지 죽는다는 공포를 사력을 다해 밀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과장하자면) 우리가 좇는 목표, 행복, 즐거움, 꿈이나 돈과 같은 것들은, 그것들의 소중함을 폄하하거나 모두가 무가치하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이 공포를 의식 밖에 두는 데 궁극적인 공통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은 게중에서 가장 정직하거나 확실한 방법...쯤?
추측건대 사랑이라는 것이 죽음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들을 가장 잘 불러오기 때문은 아닐까?
개인에게 그것은 이른 아침 침대를 끌어안는 대신 몸을 일으켜내고, 균형잡힌 먹을거리를 차려 먹고, 밖에 나가 운동을 하게 하고, (대학원생인 나로 하여금) 역작은 아닐지언정 습관적으로 흥미로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예컨대 하루의 모든 시간을 버거움이 아닌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또한 응당 그렇게 하고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인 활력일 것이다.
상대의 안녕에 관심을 가지고, 상대도 나의 안녕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 모두의 활기를 찾고, 그들 모두의 존속을 나의 그것 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면서 같이 존재하고, 궁극적으로는 새 생명, 새 존재의 탄생과도 연결되는 기작(?)인 것이다.
그래서, 같은 표현이고 여전히 모호하지만, 나는 반드시 영원히 없어진다는 극적 공포에 대항하는 수단 중 하나는 어쩌면 바로 내가 지금 여기 생각하고 살아있다는 점과 나에게 소중한 몇몇 타인들 또한 그렇다는 점을 되새기면서 스스로를 포함한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행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 대상의 존속을 나의 존재만큼이나, 혹은 그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사랑하라/한다는 말은 재귀적이고 모순적인 표현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존재한다면 모름지기 부재를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실격같은 것인가?


깜냥을 벗어나는 것들을 생각하니 뇌절하는것 같아서 그만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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