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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서, 타이밍이 맞아서 새해 댓바람부터 오랜만에 해외 학회를 다녀왔다. 일기를 쓴다면 대체로 이시간에 쓰긴 했는데, 오늘이 여느날과 다른 점은 바로 지금이 잠들기 전 발악하는 시간이 아니라 7시간의 꿀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해가 져있어서 당황스러운 시간이라는 점이다. 자가 격리를 해야하는 10일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돌아간 시간대를 되돌리는 데 꽤나 큰 고통이 따랐을 것 같다. 연구실 세미나를 앞두고있어서 그저 허송할 수는 없지만, 자가 격리 방침 덕분에 생긴 열흘 남짓의 자유시간은 나를 관찰하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학회장 근처의 UCSD 캠퍼스 투어를 잠시 다녀왔었다. 투어라고해서 거창하게 어떤 가이드를 받거나 정해진 코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예컨대 학교 로고가 ..
박사라는 태그에 심오함 내지는 엄격한 자격을 부여하다보면 그 기준이 한없이 높아질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적어도 박사에게는 특정 수준 이상의 업무 성과를 기대할 수 있고, 박사는 특히 지적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삼는 부류의 인간이며, 박사라는 타이틀은 이를 직장 혹은 기대연봉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소비하려는 사람보다 자기 만족 내지는 자아 실현의 과정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더 어울린다 (...) 등등. 단번에 쌓아올려진 생각들은 아니지만, 관통하는 맥락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소위 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경멸일것이다. "적당히 얼른 박사를 따서(?) 대기업 내지는 철밥통 연구소에 가야지"와 같은 관점에 대해, 물론 그것이 폄하되어야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성격의 것인..
나는 (나 스스로의) 직관에 의한 판단을 굉장히 신뢰하는 편이다. MBTI가 한 사람의 모든것을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아주 납득 자체가 불가능한 분류 체계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때, 굉장히 일관적으로 INTJ가 나온다는 점이, 확증 편향적이고 자기 설득적인 면이 있지만, 또 꽤나 그럴싸하다. 직관적인 것이 편리한 점 중 하나는, 내가 직관적인 것을 선호하게 된 이유이기도 한 것 같지만, 사고의 진행이 굉장히 빠르다는 점이다. 근거를 대가며 설득하고 단계적으로 하나씩 이해하고 아래에서부터 체계적으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단숨에 관철하고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 안에 산재한 개념들로 받아들이고 더이상 직관으로 설명하기 어려울때까지 과감하게 다음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예..
나는 박사과정 4년차, 이제 곧 5년차에 접어드는 대학원생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당시에는 대학원에 가겠다고 생각한 것에 조금의 의문도 들지 않았다. 당연히, 그러나 막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선택지는 사실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은 아니게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높은 확률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니까. "나는 사실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이후에 이루고자 하는 더 큰 꿈이있어"와 같은 달콤한 말로 스스로를 속이기도 쉬웠다. 하지만 그리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리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매달 따박따박 부족하지는 않은 수준의 월급을 받고, 연구라는 것이 대관절 무엇인지 불안하고 버거워하고, 보고서 한장도 ..